개인

리포트 서론을 세 걸음으로 잡으면 본문이 따라옵니다

리포트가 주제에서 벗어났다는 말을 듣는 원인은 본문이 아니라 서론에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 안에 있는지, 무엇이 아직 비어 있는지, 그래서 이 글이 무엇을 하는지. 이 세 걸음이 서론에 다 들어가면 본문 절 제목은 그 약속을 나눠 가진 조각이 됩니다.

서론에서 정해지는 것은 인상이 아니라 범위입니다

과제를 돌려받고 자주 보는 지적 가운데 하나가 주제에서 벗어났다는 말입니다. 벗어난 문단을 찾아 지워도 다음 과제에서 같은 말을 또 듣습니다. 원인이 그 문단에 없기 때문입니다. 서론이 다룰 자리를 정해 주지 않으면 본문은 아는 것 중에 쓸 만해 보이는 것을 순서 없이 꺼내 놓게 됩니다.

그래서 서론은 읽는 사람을 맞이하는 인사말이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적어 두는 약속문에 가깝습니다. 약속이 좁을수록 본문이 편해집니다. 인공지능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겠다고 쓰면 어떤 문단을 넣어도 어울리고 어떤 문단을 빼도 아쉽습니다. 대학 도서관의 챗봇 도입 사례 세 곳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겠다고 쓰면 넣을 것과 뺄 것이 그 자리에서 갈립니다.

서론을 먼저 써야 하는지 나중에 써야 하는지는 자주 갈리는 질문인데, 나눠서 답할 수 있습니다. 범위를 정하는 세 줄은 먼저 씁니다. 그 세 줄을 문장으로 다듬는 일은 본문을 다 쓴 뒤에 합니다. 자료를 읽다 보면 범위가 조금씩 옮겨 가기 때문입니다.

이 세 걸음은 논문 서론을 뜯어보다 나왔습니다

언어학자 존 스웨일스는 1990년에 낸 『Genre Analysis』에서 여러 분야의 논문 서론을 모아 놓고 반복되는 움직임을 추려냈습니다. 거기서 나온 것이 CARS 모형이라고 불리는 세 걸음입니다. 연구할 자리를 만든다는 뜻의 이름인데, 학술지 논문에서 뽑은 것이지만 학부 리포트에도 그대로 옮겨집니다. 처음 보는 글에서 읽는 사람이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은 분량과 상관없이 같기 때문입니다.

  • 자리 잡기. 이 주제가 어떤 이야기 안에 있는지 밝힙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나 앞선 연구를 두어 문장으로 요약하는 자리입니다.
  • 빈틈 짚기. 그 이야기 안에서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을 짚습니다. 앞선 설명이 놓친 부분, 서로 어긋나는 결과,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 가운데 하나면 됩니다.
  • 빈틈 차지하기. 이 글이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하는지 밝힙니다. 무엇을 비교하는지, 어떤 자료를 쓰는지, 절이 어떤 순서로 이어지는지까지 여기에 옵니다.

빠지기 쉬운 것은 두 번째 걸음입니다

배운 내용을 요약하고 곧바로 결론으로 건너뛰면, 읽는 사람은 이 글이 왜 쓰였는지 모르는 채로 본문을 따라가게 됩니다. 빈틈을 짚는 문장은 길 필요가 없습니다. 앞의 두 설명은 각각 한쪽만 다루고 있어서 둘을 같이 놓고 본 자료는 찾기 어려웠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래 두 서론은 같은 과제에서 나온 것입니다. 앞의 것은 세 걸음 가운데 첫 번째에서 멈췄고, 뒤의 것은 세 줄이 각각 한 걸음씩 맡고 있습니다.

자리만 잡고 끝난 서론
최근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도서관 역시 예외가 아니며 다양한 서비스가 도입되고 있다.본 보고서에서는 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세 걸음이 한 줄씩 들어간 서론
대학 도서관 몇 곳이 이용 안내 창구에 챗봇을 붙였고, 각각 도입 과정을 공개했다. (자리)공개된 자료는 도입 절차를 다루지만, 이용자가 실제로 무엇을 물었는지를 함께 정리한 것은 찾기 어려웠다. (빈틈)이 글은 공개된 세 건의 문의 유형을 같은 기준으로 나눠 비교한다. 2절에서 기준을, 3절에서 비교 결과를 다룬다. (차지하기)

본문 구조는 조사형과 논증형 둘로 갈립니다

직접 조사하거나 실험한 것을 보고하는 과제라면 서론, 방법, 결과, 논의 순서를 씁니다. 오래된 관습처럼 보이지만 자리 잡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의학 학술지 네 곳의 논문을 1935년부터 1985년까지 표본으로 뽑아 센 조사에 따르면, 이 네 단계 구성은 1940년대에 처음 나타나 1970년대에 80%에 이르렀고 1980년대에는 원저 논문에서 사실상 유일한 형식이 됐습니다(Sollaci & Pereira, Journal of the Medical Library Association, 2004).

책과 자료를 읽고 자기 주장을 세우는 과제라면 네 단계 대신 주장, 근거, 반론, 재반박 순서가 맞습니다. 두 구조를 섞으면 방법 절에 주장이 들어가고 논의 절이 요약으로 끝나는 글이 됩니다. 어느 쪽인지는 과제 문구가 알려 줍니다. 조사하라, 측정하라, 비교하라면 앞의 것이고, 논하라, 평가하라, 견해를 밝히라면 뒤의 것입니다.

과제 문구쓰는 구조결론 절에 오는 것
조사하라, 측정하라, 결과를 정리하라서론, 방법, 결과, 논의결과가 처음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 그리고 이 방법으로는 알 수 없는 것
논하라, 평가하라, 견해를 밝히라주장, 근거, 반론, 재반박반론을 거친 뒤에도 남는 주장과, 그 주장이 성립하는 조건
비교하라, 유형을 나눠라기준, 대상별 적용, 대조표기준이 갈라낸 차이와, 이 기준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

인용은 예의 표시가 아니라 근거의 주소입니다

인용 형식을 맞추는 데 시간을 쓰다 보면 인용이 규칙 지키기처럼 느껴집니다. 인용이 하는 일은 하나입니다. 읽는 사람이 그 문장을 직접 확인하러 갈 수 있게 주소를 남기는 것입니다. 확인하러 갈 수 없는 인용은 형식이 아무리 맞아도 값을 못 합니다.

값을 가장 쉽게 잃는 자리가 재인용입니다. 어떤 블로그가 인용한 통계를 그 블로그를 근거로 적으면, 읽는 사람은 그 숫자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블로그나 백과사전 항목은 출발점으로 쓰고, 각주에는 그 항목이 달아 둔 원문을 적습니다. 원문을 못 찾으면 그 숫자는 빼는 편이 낫습니다. 확인 못 한 숫자 하나가 나머지 문장의 신뢰까지 같이 깎습니다.

  • 따온 문장은 따옴표 안에, 요약해 옮긴 내용은 따옴표 없이. 둘 다 출처는 답니다.
  • 숫자와 날짜에는 확인한 날짜를 같이 적습니다. 웹 자료는 조용히 바뀝니다.
  • 강의계획서가 정한 형식이 있으면 그 형식이 먼저입니다. 없으면 한 편 안에서 하나로 통일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분량은 채우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것입니다

A4 다섯 장을 채우라는 조건이 붙으면 대개 첫 장부터 순서대로 씁니다. 그러면 서론이 한 장 반이 되고 결론은 마감 30분 전에 세 줄로 끝납니다. 먼저 나눠 두면 그런 일이 줄어듭니다. 다섯 장이면 서론 반 장, 본문 세 장, 결론 반 장, 참고문헌 한 장이 무난합니다. 본문 세 장을 절 세 개로 나누면 한 절이 한 장, 문단으로는 서너 개입니다.

이렇게 나눠 두면 모자란 자리가 눈에 보입니다. 두 번째 절이 반 장에서 멈췄다면, 문장을 늘릴 게 아니라 그 절이 맡은 주장에 근거가 하나뿐이라는 뜻입니다. 자료를 하나 더 찾아 붙이면 분량과 설득력이 같이 올라갑니다. 문장을 늘려 채운 반 장은 읽는 사람이 먼저 알아봅니다.

제출 전 30분에 하는 일

다 쓴 직후에는 자기 글이 잘 읽힙니다. 문장 사이를 메우는 정보가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입니다. 그 정보가 없는 사람 자리에 앉아 보는 방법 가운데 가장 빠른 것은 절 제목만 위에서 아래로 이어 읽는 것입니다. 제목만 읽어서 논지가 흐르면 본문도 대체로 흐릅니다.

  • 서론의 세 줄이 각각 한 걸음씩 맡고 있는지
  • 본문 절 제목마다 서론에서 한 약속이 하나씩 짝지어지는지
  • 인용한 자료를 전부 실제로 열어 봤는지
  • 결론이 요약이 아니라 서론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지
  • 파일 이름, 형식, 제출처가 강의계획서 조건과 맞는지

다음 과제에서 먼저 해 볼 것

다음 과제를 받으면 자료를 모으기 전에 서론 세 줄부터 적어 보세요. 문장을 다듬을 필요는 없고, 자리 한 줄, 빈틈 한 줄, 할 일 한 줄이면 됩니다. 세 줄을 그대로 들고 담당 교수나 조교에게 이 범위가 과제 취지에 맞는지 물으면, 자료를 다 읽은 뒤에 범위를 바꾸는 일이 줄어듭니다. 세 줄을 적는 데는 10분이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생성형 AI로 초안을 써도 되나요?

학교와 강의마다 다릅니다. 같은 학교 안에서도 어떤 강의는 사용한 도구를 적어 두면 허용하고, 어떤 강의는 전면 금지합니다. 그래서 답은 강의계획서와 과제 공지에 있습니다. 아무 말이 없으면 담당자에게 물어보고 그 답을 메일로 남겨 두세요. 허용되는 강의라도 확인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초안에 들어간 사실과 인용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입니다. 없는 논문 제목과 없는 페이지 번호가 그럴듯한 형식으로 나오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인용은 하나씩 원문을 열어 확인하고, 못 찾으면 뺍니다.

참고문헌은 몇 개나 있어야 하나요?

개수 자체를 기준으로 삼는 곳은 강의계획서에 최소 몇 편이라고 적어 둔 강의뿐이고, 그때 그 숫자는 하한입니다. 그 밖에는 개수보다 배치가 기준이 됩니다. 본문에서 사실이나 숫자를 꺼낸 자리마다 확인할 주소가 붙어 있는지 보세요. 목록에는 열 편이 있는데 본문 인용은 두 곳뿐이라면, 나머지 여덟 편은 읽었다는 표시일 뿐 근거로 쓰이지 않은 것입니다. 반대로 인용 자리는 많은데 출처가 두세 편에 몰려 있으면 한쪽 시각만 옮긴 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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