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가 낫다는 연구는 이미 흔들렸습니다
2014년에 뮐러와 오펜하이머가 Psychological Science 에 발표한 논문 하나가 널리 퍼졌습니다. 제목이 펜이 키보드보다 강하다였고, 노트북으로 필기한 학생이 손으로 필기한 학생보다 개념을 묻는 문항에서 점수가 낮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강의실에서 노트북을 닫으라는 근거로 오래 인용됐습니다.
2019년에 다른 연구진이 이 실험을 그대로 다시 했습니다(Morehead 외, Educational Psychology Review). 손글씨가 조금 나은 경향은 보였지만 집단 사이 점수 차이가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았고, 두 번째 실험에서는 아예 필기를 하지 않은 집단과도 뚜렷하게 갈리지 않았습니다. 직접 재현 연구들을 모아 계산한 효과도 손글씨 쪽으로 작게 기울었을 뿐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의 결론은 어느 방식이 우월한지 말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원래 논문은 틀린 것일까요. 두 논문을 나란히 놓고 읽으면 남는 것은 도구 비교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던 다른 변수입니다.
성적을 가른 것은 그대로 옮겨 적었는지였습니다
2014년 논문은 학생들의 필기를 강의 원문과 세 단어 단위로 맞춰 겹치는 비율을 셌습니다. 첫 실험에서 노트북 필기는 원문과 평균 14.6%가 겹쳤고 손 필기는 8.8%였습니다. 손으로는 강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줄이고 바꿔 쓰게 되는데, 그 강제된 요약이 이해로 이어졌다는 것이 저자들의 해석이었습니다.
더 눈여겨볼 것은 두 번째 실험입니다. 노트북 집단에 강의 전에 그대로 받아 적지 말고 자기 말로 쓰라고 직접 알려 주었습니다. 결과는 겹침 12.07%였고, 같은 말을 듣지 않은 노트북 집단은 12.11%였습니다. 사실상 차이가 없었습니다. 개념 문항 점수도 두 노트북 집단 사이에서 유의하게 갈리지 않았습니다. 받아 적기는 알려 주면 고쳐지는 습관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필기법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의지로 참는 대신 지면을 그렇게 생기게 만들어서, 받아 적을 자리를 애초에 좁혀 두는 쪽입니다.
다 적은 것 같은 필기에도 3분의 1만 남습니다
2016년에 나온 한 논문은 선행 연구를 정리하면서, 학생이 강의의 중요한 내용 가운데 노트에 남기는 몫이 보통 3분의 1 정도라고 적었습니다(Luo, Kiewra & Samuelson, Instructional Science). 더 뾰족한 숫자가 그다음 문장에 있습니다. 노트에서 빠진 내용을 나중에 시험에서 떠올릴 확률은 대략 5%였습니다.
이 두 숫자를 붙여 보면 강의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보입니다. 놓친 것은 사실상 사라집니다. 그러면 필기의 목표가 달라집니다. 많이 적는 것이 아니라 놓친 자리를 표시해 두는 것입니다. 잘 안 들린 대목에 물음표 하나를 남기는 습관이, 그 대목을 두 문장 더 받아 적는 것보다 많이 남깁니다.
코넬 노트는 지면을 세 칸으로 나눕니다
코넬대에서 학습법을 가르친 월터 파우크(Walter Pauk)가 만든 방식이고, 그의 책 <How to Study in College>에 실려 지금도 그 대학 학습 지원 부서가 안내하는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구조는 단순합니다. 지면 오른쪽 넓은 칸에 강의 중 필기를 하고, 왼쪽 좁은 칸은 비워 두고, 맨 아래 두세 줄도 비워 둡니다.
핵심은 비워 둔 두 칸을 강의가 끝난 뒤에 채운다는 데 있습니다. 왼쪽 좁은 칸에는 오른쪽 내용을 물어보는 질문을 적고, 맨 아래에는 그 지면 전체를 두세 문장으로 줄입니다. 복습은 오른쪽을 가리고 왼쪽 질문에만 답해 보는 것으로 합니다. 앞 절에서 본 문제, 그러니까 받아 적기를 의지로는 못 막는다는 문제를 이 구조가 대신 처리합니다. 나중에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강의 중에 적는 내용부터 달라지고, 요약 줄이 끝내 비어 있으면 그 강의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눈에 보입니다.
종이의 좌우 배치가 이 방식의 본질은 아닙니다. 화면에서는 본문, 단서 질문, 요약을 위아래 세 덩어리로 두어도 같은 일을 합니다. 비워 두고 나중에 채운다는 순서만 지키면 됩니다.
강의 유형이 필기법을 고릅니다
방식마다 잘 맞는 강의가 다릅니다. 슬라이드를 미리 나눠 주는 수업과 칠판에 유도 과정을 써 내려가는 수업에 같은 필기를 하면 한쪽은 반드시 낭비가 됩니다.
| 방식 | 잘 맞는 강의 | 흔한 실패 |
|---|---|---|
| 코넬(본문, 단서 질문, 요약) | 말로 설명이 이어지는 강의 | 강의가 끝나고 왼쪽 칸을 안 채워 그냥 필기가 됨 |
| 개요형(들여쓰기 계층) | 목차가 뚜렷한 강의 | 계층을 맞추는 데 신경이 가서 내용을 놓침 |
| 도해형(관계를 그림으로) | 개념 사이 관계가 핵심인 강의 | 그림은 남는데 정의와 조건이 빠짐 |
| 배포 자료에 덧붙이기 | 슬라이드를 미리 주는 강의 | 자료가 있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안 적음 |
| 그대로 받아 적기 | 용어 정의와 인용을 정확히 남겨야 할 때 | 강의 내내 쓰면 이해가 뒤로 밀림 |
쉬는 틈의 2분이 강의 후 30분보다 낫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2016년 연구는 노트를 언제 손보는 게 좋은지도 실험으로 비교했습니다. 강의를 중간중간 멈추고 그때마다 노트를 손본 집단이, 강의가 끝난 뒤 같은 시간을 몰아서 쓴 집단보다 노트와 시험 점수 모두에서 나았습니다. 옆 사람과 같이 손본 집단은 원래 노트에 담긴 항목이 더 많았고, 그대로 베껴 옮기는 것보다 손보는 쪽이 낫다는 차이도 나왔지만 이 두 차이는 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쓸 수 있는 형태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강의가 잠깐 멈출 때마다 방금 지나간 부분에 질문 하나를 적습니다. 교수가 파일을 열거나 다음 자료를 찾는 20초도 그 틈입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요약 두 문장을 씁니다. 강의실을 나서는 순간 그 두 문장은 저녁으로 미뤄지고, 저녁에는 늘 다른 일이 있습니다.
일주일 뒤에 그 노트로 설명이 되는가
필기법을 바꿨을 때 좋아졌는지 확인하는 기준은 분량도 모양도 아닙니다. 일주일쯤 지난 뒤 그 지면을 펴고, 본문을 가린 채로 그 수업을 듣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해 보는 것입니다. 막히는 지점이 그 노트의 빈 곳입니다.
어떤 방식이 맞는지는 과목마다 다르고, 두 주만 바꿔 보면 대개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어느 방식으로 가든, 강의가 끝난 뒤 비워 둔 칸을 채우는 몇 분이 일과에 없으면 방식은 이름만 남습니다. 시간표에서 그 몇 분이 어디인지, 그것부터 정해 두세요.
자주 묻는 질문
그러면 노트북으로 필기해도 되는 건가요?
됩니다. 두 연구가 함께 보여 준 것은 도구가 아니라 그대로 받아 적는 습관이 문제라는 쪽입니다. 다만 키보드는 강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어서 받아 적기가 쉬워지고, 그 쉬움이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화면에서 필기한다면 본문 칸을 일부러 좁게 잡거나, 단서 질문과 요약 칸을 미리 만들어 두고 강의 중에는 본문만 건드리는 식으로 제약을 스스로 걸어 두는 편이 낫습니다. 강의 중에 다른 창을 열게 되는 문제는 필기 방식과 별개이고, 그건 필기법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슬라이드를 미리 주는 수업에서는 뭘 적나요?
배포 자료에 없는 것만 적습니다. 슬라이드는 이미 본문 칸을 채워 놓은 상태이니, 내가 채울 것은 교수가 말로만 한 부연, 들어 준 예시, 그리고 시험에 나온다고 흘린 대목입니다. 자료를 인쇄하거나 화면에 띄워 두고 여백에 질문을 달고, 수업이 끝나면 그 자료 위에 요약 두 문장을 붙이세요. 자료가 있으니 안 적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수업에서 남는 것은 나중에 아무도 다시 열지 않는 파일 하나입니다.